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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화가 고장 났어
작성자 시흥병원 조회수 2974 작성일 2022.08.24

 

 

오전 8.

어르신이 한 손엔 지 갑, 다른 한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병동 문 앞에서 문이 안 열린다며 유리문을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누르고 계신다.

어르신께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더니 전화기가 고장이 나서 새것을 사러 나가신다고 한다.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전화기가 고장이 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어르신을 모시고 병실로 들어왔다.

어르신, 뭐가 안 되는 것 같아요?” 라고 물었더니

전화가 안 돼라며 전화기를 건네신다.

전화기를 확인해 보니 문제없이 통화도 잘 되었다.

그리고 어르신에게 확인시켜 드리기 위해 직접 전화를 걸어보라고 드려보았다.

(어르신의 전화기는 폴더 폰이며, 기억하기 쉽도록 단축번호 1번부터 5번까지 크게 글씨로 써서 휴대폰 앞에 붙여 드렸다.)

어르신은 전화기를 손에 든 후, 전화기에 붙여 놓은 종이의 단축번호 1번을 힘 있게 누르시고는 내 말이 맞지?’라는 듯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신다.

한 순간 말을 잃어버리고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. 몇 년을 같이 어르신과 생활하다 보니 내 나이를 인식하지 않고 살고 있듯이, 어르신이 92세가 훌쩍 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구나!

그리고 어르신께 어르신~ 오늘부터 전화기가 잘 될 때까지 같이 걸어 봐요.” 라고 제안을 했더니 기쁜 얼굴로 승낙하신다.

첫 번째, 누구에게 전화를 할 것인지 결정한다.

두 번째, 단축번호 종이를 확인한다.

세 번째, 전화기를 연다.

네 번째, 번호를 확인하고 3초간 꾹 누른다.

다섯 번째, 귀에 대고 소리를 듣는다.

첫 날: 휴대폰에 붙여 놓은 종이의 단축번호 1(큰아들)을 꾹 누르고, 통화가 안 된다고 나에게 내미셨다.

- 전화사용 순서를 알려드리고 통화하시도록 도와드렸다.

- 빵이 먹고 싶다고 통화 후, 빵이 1상자 배달이 와서 어르신이 나눠 먹으라고 주셨다.

둘째 날: 휴대폰에 붙여 놓은 종이의 단축번호 2()을 꾹 누르고, 통화가 안 된다며 또 내밀었다.

- 전화사용 순서를 알려드리고 통화하도록 도와드렸다.

- 떡과 김치찌개 이야기로 통화하신 후 저녁에 떡과 김치찌개가 배달이 와서 저희에게 떡을 나누어 주셨다.

셋째 날: 휴대폰에 붙여 놓은 종이의 단축번호 3(작은아들)을 꾹 누르고, 통화가 안 된다며 또 내밀었다.

- 전화 용건을 말씀드리고 아드님께 양해를 구했더니 너무 고맙다며 얼마든지 걸어도 된다고 허락하셨다.

넷째 날: 휴대폰의 붙여 놓은 종이의 단축번호 1(큰아들)을 확인하고, 전화기를 열어서 1번 버튼을 누르고 통화를 했다.

- 폭풍 칭찬을 해 드렸다. 그리고 보답으로 어르신께 빵을 받았다.

결과: 성공률은 반반이나 오늘도 어르신은 자녀들과 통화를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계신다.

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
시흥병원이 되겠습니다.